문답 없이 한 번에 일러주는 점사, 거침없도다

문답 없이 한 번에 일러주는 점사, 거침없도다

신승…

산천사 수연보살

 

- 3대째 내려오는 무속인 집안

- 부도 막고 사업 일으키고, 죽음 막는 기적 일으켜

- 365일 긴 줄이 끊이지 않아

- 소박하고 겸손하게 돈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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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생활 하면서 한 번도 손님 없어서 애태워본 적 없고, 굿이 없어 산에 기도해서 산신령에게 매달려 본 적도 없다. 신명이 계시는 이 곳에 머무르고 나가지 않는다.”

 

취재를 하며 수많은 무속인들을 만났지만 산천사 수연보살은 여러 모로 특별했다. 여타 무속인들과는 다른 모습들이 많았다. 그만큼 강렬하고 잊히지 않는 만남이었다. 365일 수연보살을 찾는 신도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문답 없이 일러주는 거침없는 점사

우선 수연보살의 점사에는 거침이 없다. 문답의 과정 없이 찾아온 신도에 대한 모든 것을 한 번에 읊어 준다. 보통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대강의 힌트를 얻어 끼워 맞추기 식으로 점사를 말해주는 뜨내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수연보살은 문답은 전혀 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왔는지조차도 묻지 않는다. 생년월일만 받으면 가지고 온 궁금증까지 모두 나와 버리기 때문에 신기해들 한다. 나는 그저 신의 중개자로서 일러주시는 대로 쭉 이야기 해 준다. 그 다음에 궁금한 것을 묻도록 해서 추가적으로 부연 설명을 해 드린다.”고 설명했다.

 

시간을 버리는 문답의 과정을 건너뛰고 중요한 내용을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수연보살을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전부 다 봐줄 수 있는 것 같았다. 수연보살이 하루에 점사를 봐 주는 신도들의 수는 상당하다. 한 번 보고 간 이들은 신기함에 주변인들에게 소개를 해 주기 때문에 365일 늘어선 줄이 끊이질 않는다. 연락을 하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신도들의 수가 일만 천 삼백명에 달한다고 한다.

 

또 하나 특별한 것은 주판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무당의 거처에서 쉬이 볼 수 있는 방울 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수연보살만의 육십갑자가 주판에 있기 때문이다. 신을 불러 놓고 주산을 통해 나이, 숫자를 계산해서 문답 없이 한 방에 들려준다. 무당이 흔히 언급하는 조상 문제도 말하지 않는다. 수연 보살은 사람 살아가는 집에 조상 없는 집은 없다. 살아 있는 조상에게 잘 하라. 사람이 죽어서 조상이 된다고 말한다. 이 분이 돌아가셔서 그 모든 한을 풀고 가기 때문에 해코지 하지 않는다. 대신 산소 등 잘못 되어 있는 것들은 말해 준다.”고 설명했다.

 

남의 사주를 들고 찾아온다면 봐주지도 않는다. 본인을 오라고 한다. 물론 가족은 예외다. 부부의 외도에 대한 질문도 받지 않는다. 남편 혹은 부인에게 다른 애인이 있다면 그것은 본인이 더 잘해야 할 일이라 일러줄 뿐이다.

 

소박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이 신조,

돈에 연연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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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보살은 자신의 첫 번째 신조로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꼽았다. 신의 제자로서 모름지기 소박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찮은 신도가 오더라도 고개 숙일 줄 아는 무속인이 되고자 한다. 무속인은 답답함을 가지고 오는 이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것이 임무일 뿐이다. 그래서 수연보살은 속을 확 뚫어주는 시원한 점사를 내놓으면서도 비용은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만 받고 있다. 그녀는 신은 욕심을 부려서 하는 일에는 응답을 하지 않고 도와주지 않는다며 언제까지고 욕심 없이 사람들을 구제하고 나아갈 길을 일러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전했다.

 

무당이 아무리 잘나도 신도 분이 찾아와 주지 않으면 배고픔을 면치 못하고, 외로움을 면치 못한다. 욕심도 내려놓고 사치도 내려놓고, 보여주기 위함도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음이 중요하다. 나는 내려놓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내려놓아 질 수 밖에 없었다. 삶에서 수많은 부침과 우여곡절을 겪었다. 워낙 다양한 일들을 겪다 보니 더 튀어 오르면 고난과 시련이 올까봐 두려웠다. 비우자, 낮추자, 욕심내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너무 행복하다. 여기까지만 행복하자. 많이 가진 것은 없지만 더 이상은 필요 없다.”는 수연보살의 말들이 이 기자에게도 참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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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도 예쁜 것도 많지만 그것을 입고 싶지 않다. 우리 옛 조상들은 무명 치마저고리 한 벌 입고 허리끈 매시고 굿을 했다. 나 역시 그런 굿을 하고 싶다.”는 것이 수연 보살의 말이었다. 허례허식 없이 기본에 충실할 뿐,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정말 필요한 것만으로 신도들만을 위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3대째 이어지는 신내림의 숙명,

험난한 인생이지만 다시 태어나도 이 길 걸을 것

 

 

20200610_162233.jpg수연 보살은 대대로 내려오는 무당 집안의 내력을 갖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하동에서 대 박수무당이었다. 외할머니 역시 경상도 진주 사천 땅의 대 무당이었다. 남편의 고모도 굿 만으로 절을 지었을 정도로 이름 난 무당이었으며 친할머니 역시 무당이라고 한다. 얼마 전 딸도 신내림을 받았기에 3대째 내려오는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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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도 숨어 있다. 수연 보살은 자신은 신을 어쩔 수 없이 받았지만 딸만은 이 험난한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랐다. 그 바람대로 딸은 대학원을 졸업 하고 교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5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뇌졸중으로 딸은 사경을 헤맸다. 어쩔 수 없이 살려만 주세요라고 빌었는데, 기적이 찾아왔다. 머리를 가르고 종양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었던 것이 그냥 혈종으로 밝혀지고, 일주일 내에 피가 안 빠지면 심각해 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1주일 만에 소변으로 피가 다 빠진 것. 그러나 그렇게 살아난 딸은 무당을 하겠다고 했다. 엄마 입장에서는 썩 내키지 않아 굿도 엉망으로 했다. 하지만 딸은 결국 스스로 다 받아내고 무당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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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처음 신의 길로 들어선 것은 36년 전이다. 32세에 결혼했던 남편은 뿌리 깊은 기독교 집안의 4대독자였다. 시어머니는 인천 감리교회 장로였다. 엘리트였던 남편과 결혼한 그녀는 시댁 성에 처지 않았다. 주변을 가득 채운 교인들도 그녀를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처 없이 택시를 타고 무작정 내린 곳이 석바위가 있는 점집이었다. 마당에서 마늘을 까고 있던 보살은 그녀를 보자마자 십자가를 떼어 놓고 와라라며 외할머니가 무당인데 어디 가겠냐? 하시더니 신굿을 해야겠다고 대번에 외쳤다. 그렇게 신굿을 하는 장면을 시어머니가 보고 바로 이혼을 당했다.

 

돌이켜보면 험난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수연 보살은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 하고 원망하는 대신 신령님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수연 보살은 무속인 길이 험난하고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신령님을 원망하거나 모시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신령님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앉아서 있으면 길을 열어주는 분들이다. 뭔가 잘못이 있다면 내가 한 것이다.”라며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다시 무당이 되어 천지신명을 찾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황해도 신굿으로 유명한 박선옥 만신의 첫 번째 제자

이후 훌륭한 신어머니도 만났다. 수연 보살의 신어머니는 바로 황해도 굿으로 유명한 박선옥 만신이다. 박선옥 만신은 고유성과 원형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성이 매우 높아서 황해도 굿에서는 일인자로 꼽힌다. 수연보살은 이 박선옥 만신의 첫 제자다. 인천의 박명애 보살과는 형제간이다. 수연보살은 이 신어머니를 위한 10주년 굿도 하고 있다. “살아계실 때는 소중함을 잘 몰랐다. 돌아가신 후에야 고마움을 깨닫고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그 분이 아니었으면 과연 내가 신명을 모실 수 있었을까 싶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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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를 막고 죽음을 막은 기적들

오랜 세월 수많은 영혼들을 달래줘 왔던 만큼 행한 기적도 상당하다. 수연 보살에게 그녀의 영험함 덕에 잘 된 신도들의 사연을 물었다. 수연 보살은 운맞이’, 문서를 나가게 하는 것, 병굿 이 3가지에서는 바로 영험함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특히 사업가들이 몰린다고 한다.

 

우선 대구에 있을 때 부적을 써 주었던 사장님은 2차 부도의 위기에서 살아났다. “1차 부도가 나고 3일 후에 2차 부도로 망할 것이 분명하던 때에 점을 보러 온 분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큰 물류센터가 팔리지 않는데, 어쩔 재간이 없었다. 점을 보아도 해 줄 말이 없었다. 서랍을 여니 부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