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삶을 닮아 있는 법상사 법미 주지 스님의 삶.~~~

부처님의 삶을 닮아 있는 법상사 법미 주지 스님의 삶.~~~

신승…

그 비범하고 특별한 기적적 삶을 되짚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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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몽으로 전생을 찾고 현세와 미래까지 내다보시다

- 탁발 수행 통해 도를 닦고 불사를 이루다

- ‘너는 석가여래니라, 불쌍하고 가련한 중생을 구제해야하느니라부처님 말씀 들어

 

세상에는 종종 눈을 의심케 하고, 이성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흔히 우리가 기적이라 일컫는 일들이다. 법상사의 주지 법미 스님의 일생은 가히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범하고 특별했다. 두 차례에 걸쳐 장장 260, 4시간 20분가량 진행된 인터뷰는 놀랍고 신비한 일화들의 연속이었다.

 

법미 스님께서는 속가에서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기도를 하고부터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 스스로도 의아하다 하실 정도였다. 잇따른 선몽을 통해 부처님의 크신 뜻을 깨닫고, 전생을 찾았으며 미래까지도 알게 되었다. 이 곳 법상사의 터를 잡게 되었으며 단 돈 50만원 밖에 없던 상황에서 넓은 터에 불사를 이루고 산신각을 마련할 수 있었다. 기적은 법상사를 찾는 신도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두 부처님과 산신의 원력이 함께 해서이리라.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신비롭지만 결코 과장되지 않게 들려주신 법미 주지스님의 특별한 일생과 기적을 부족하나마 활자 속에 담아보고자 한다.

 

스물아홉, 출가를 결심하다

법미 주지스님이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은 스물아홉 되던 해에 아주 미미한 꿈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꿈속에 속가 아버지 모습으로 공중에 출연하셔 내가 너에게 빚을 진 것이 있다하시며 동그란 고리 2개와 돈 14천원을 주신 것. 법미 주지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아버지 모습을 빌어 나타나신 것이었다. 14천원이라는 돈 역시 의미가 있었다. 어떤 소원이라도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게 하시는 일사천리불 부처님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 꿈을 꾼 이후로 길을 나섰다.”고 설명하셨다. 고향인 대구에서 가방 공장을 차리고 평범하게 살던 일상이었다. 결혼도 해 두 명의 아이도 있던 때였다. 하지만 둘째가 백일 될 무렵, 그렇게 무작정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

 

절에 어떠한 인연도 없던 탓에 처음에는 모친이 인도하신 점사 보는 곳에서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법사 제자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기에 시키는 대로 했지만 가면 갈수록 의구심이 생겼다. 사리사욕을 채우고 거짓말을 하는 모습들만 보였기 때문이다. 하루는 모시고 있다는 신발장을 가리키며 때려 부숴버리겠다 했다. 그제야 그 무속인은 기운이 너무 넘쳐흘러 자신은 감당을 하지 못하니 백일기도를 가 보라 했다. 그렇게 속리산 법주사에서 기도를 시작했지만 21일 만에 하산했다. 가정에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마침 부친이 불러 70만원을 전 재산이라며 주시기에 강원도로 가서 집을 한 채 사 직접 수리를 하고 보살님과 아이 둘을 데려다 놓고 다시 떠나고자 했다. 그 날도 꿈을 꾸는데 하늘에 길고 하얀 구름길이 천상까지 연결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속세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하고 설악산에 들어갔다. 그 때 신흥사 화주보살님께서 소개해 주신 절이 내원암이었다.

 

부처님의 아들임을 깨닫고 진정한 집을 찾다

내원암에 기거하게 된 것 역시 보통 인연은 아니었다. 당시 주지스님은 절에 잘 계시지 않던 분이었다. 전국을 다니시기에 내원암에는 아주 간혹 들르기만 했다. 그런데 법미 스님이 찾은 바로 그 날은 주지스님이 계셨다. 이것 역시 부처님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머물 수 없나 물으니 방안에서 어디서 왔는가하시기에 모친이 계신 묵호에서 왔습니다하니 묵어가게하고 허락을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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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미 스님은 그 때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다. 머무르라는 허락이 너무나 반가웠다. 그렇게 하룻밤을 머물고 설악산 정상을 보고 있다가 스스로 무르팍을 쳤다. 단 하루 머무른 것뿐인데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내 집이라는 것을 단 하루 만에 깨달은 것이다. 부처님이 우리 아버지다. 부자 아버지를 두고 속가에 살았던 것은 마치 고아원에 버려진 것과 같은 것이었다. 고아원을 버리고 내 집을 찾았다 싶었다. 그 사실을 알고 사정을 해서 백일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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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천도 위해 치성으로 100일 기도드려

법미 주지스님은 그렇게 내원암에 올라 기거하며 백일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올 때 차비만 가지고 나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들어왔던 길이었다. 지게도 지고 도량청소도 하고, 신도님들 안내하는 몸보시를 하며 절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했던 100일 이었다.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 모른다.

 

법미 주지스님은 음력 2월에 기도를 들어가 100일 동안 매일 겨울에도 찬물로 목욕하며 기도했다. 하루에 3차례씩 기도하는데 시간을 단 1초도 어기지 않았다. 철야기도도 하고 천배도 했다. 당시 같이 기도하는 하는 분들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시키는 대로 다 따라하다 보니 정법이었던 것이다. 속세와의 인연은 완전히 끊었다. 바깥 음식은 전혀 먹지 않았다. 절 밖에 나가면 물도 먹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 했다. 오로지 조상천도를 위해 일념으로, 일심으로 기도하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매일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뜨거운 것을 그 때 처음 겪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지극정성에 어느 누가 감복하지 않을 수 있으랴. 후에 법미 주지스님은 꿈속에서 천상에 나무 집을 지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큰아버지 모습도 보였다. 조상님들을 모시기 위해 큰 집을 지으시는 모습이 보이니 너무 감사한 마음이 이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법미 스님은 환희심이 일어나 절에 오시는 분들께 너무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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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혜를 준다. 불쌍하고 가련한 중생을 구제해야하느니라.’ 소리 들려와

그 백일기도를 하는 동안 비범한 꿈들이 계속 이어졌다. 법미 스님은 하루는 새벽 기도를 마치고 거처하던 조그만 방에 가부좌를 틀고 누워 있는데 단전에서 음성이 들렸다. 머리 옆으로는 반달처럼 생긴 하얀 유골 2개가 보였다. 눈을 떠도 보이고 감아도 보였다. 어깨 위에서 두 팔이 생기더니 머리 위로 올라와 머리를 밀어 넣어주고는 팔이 제자리로 들어갔다. 엄청난 힘이었다. 그 때 말씀이 대지혜를 준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천수천안 관자재보살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불쌍하고 가련한 중생을 구제해야하느니라.’하는 말씀도 이어졌다. 그 말을 듣고 속초 방향을 바라보았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제 마음에 중생들을 모두 구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천상에 가서 천왕(천신의 왕)도 직면하고 왔다. 큰 불덩어리인데 눈이 하나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처음 보니 두려웠지만 말씀을 하시기를 나는 이제 여기 임기가 다 되어 다른 곳으로 가야하는데 그 곳에 서라라는 것이었다. 아침에 깨어 생각해 보니 많은 분들이 얘기하는 성령을 본 것이었다. 백일기도 중에 도를 닦아 천왕님 계신 그 자리까지 간 것이었다.

 

백일만 기도하며 머무르려던 계획은 6개월까지 이어졌다. 백일기도를 마치고 하산을 하려니 당시 주지스님께서 조금 더 있다 가시게하시기에 계속 머무르며 기도하고, 도량을 관리하며 살았던 것.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하산하라하셨는데 딱 6개월 되는 날이었다고 한다. 법미 스님은 지금 돌이켜보면 부처님은 6년 고행하셨는데 나는 6개월로 줄여주신 것이었다. ‘나는 이리 고생했지만 너는 하지 말라하며 지름길을 알려주신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사랑이고 자비심이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5년간의 탁발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