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통을 넘어 명품이 되다. 전통 명주, 문경 호산춘(湖山春) 대표 황수상

500년 전통을 넘어 명품이 되다. 전통 명주, 문경 호산춘(湖山春) 대표 황수상

관리…


조선의 명재상 황희정승의 가문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에 자리한 장수 황씨 사정공파 종택에서 생산되고 있는 가양주 ‘호산춘’이 경상북도 지정 무형문화재로 전수되며 그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에는 조선의 명재상으로 유명한 황희 정승의 가문, 장수 황씨 사정공파 종택이 자리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도 고색창연한 이 종택은 황희의 증손 황정선생이 이 마을에 들어와 집성촌을 이루면서 지금까지 대대손손 이어 오고 있는 고택으로 현재 경상북도 민속 문화제 제 163호로 등록되어 연중무휴 개방하고 있다. 이 고택에서 오랫동안 전수되어 내려오고 있는 가양주가 있으니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고 하는 ‘호산춘(湖山春)’이다. 신선이 즐기는 곡차라고 하여 호선춘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술은 현재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 18호로 지정돼, 사정공파 23대손 황수상 대표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정확한 기록 없어... 

전해 오는 문서로만 500년 추정

황씨 가문에서 내려오는 문서에 의하면 7대조 부인 칠봉 황시간이 “집에서 만든 술이 맛이 좋구나”하는 구절이 있는데, 황시간이 1400년대 말에서 1500년대 초에 살았던 인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집안에서 만들어 내려온 가양주가 적어도 500년은 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호산춘의 유래에 대해 다양한 설이 내려오지만 문경의 호산춘은 조선 중엽 이후의 문헌인 <양주방>의 주조법과 비슷해 그 시기를 또 짐작케 한다. 사정공파 종손으로 이곳을 지키고 있는 황수상 대표는 “호산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으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문서의 기록만으로 추정할 뿐이다.”고 말했다.

 

경상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春’은 좋은 술을 의미

1987년, 88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전국을 돌며 민속주를 발굴하게 되는데 호산춘은 당시 교통부장관의 추천을 받아 토속주로 지정되었다가 그 역사성과 전통성을 인정받아 1991년 경상북도 지정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처음에는 호리병 호(葫)자를 써 호산춘(葫山春)이라고 명했는데, 황수상 대표의 아버지 고 황규욱 선생이 “문경에 들어와 오랫동안 이 곳에서 나는 원료를 사용하고 이곳의 정서와 문화를 받아 이어온 술이니 문경의 특색에 맞게 호수 호(湖)자를 넣어 호산춘(湖山春)으로 바꾸자”하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춘주(春酒)는 중국 송나라 이전부터 고급술에 붙이던 애칭이다. 송나라 도연명의 시 ‘독산해경(讀山海經) 중에  ‘작춘주(酌春酒)’라는 구절을 직역하면 ‘봄이 되면 술을 빚어 마시자’이지만, 의역하면 ‘아주 좋은 술을 빚어 좋은 사람들과 나눠마시자’, ‘좋은 술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들과 나눠마시자’. 즉, 춘(春)이 좋은 술, 고급술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호산춘은 700㎖ 도자기와 유리병에 포장돼 판매된다. 유리병 한 병 당 1만 8,000원이다. 술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싸다 할 수 있는 가격이지만 호산춘의 가치를 아는 애주가들은 비싸다 여기지 않았다. 황수상 대표는 “깊은 산골에서 빚은 술이 그 명성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은 호산춘을 즐겨 찾는 단골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호산춘은 관내에서만 소비되고 있다. 문경의 하나로 마트와 문경세제 입구에 자리한 특산물명품관, 그리고 점촌초등학교 맞은편 새마을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다.  

호산춘은 원래 산북면 대하리에 위치한 종택에서 재래식으로 생산해 왔다. 그런데 지난 2014년 위생관련법이 식약청으로 넘어가며 종래의 시설을 탈피해 새로운 기준을 맞추려다 보니 재정악화로 폐업의 위기까지 갔는데, 농림부에서 호산춘의 가치를 인정해 지원금을 전달, 2014년 말 신축공장을 건설하여 그 명맥을 잇게 됐다. 현재 신축공장에는 스테인리스 소재의 탱크 다섯 대가 설치돼 있는데 한 탱크당 700ml 병 1,000개의 호산춘이 생산된다.


솔잎, 잡균을 막아주는 천연 방부제.

호산춘의 맛은 레시피가 아니라 정성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술을 빚을 때는 한순간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 황수상 대표는 “지난해 잠시 마음을 딴 곳에 팔았다가 술맛을 버린 적이 있다”며 “술을 빚는 동안에는 항시 모든 정성을 다 해야 제 맛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호산춘의 레시피를 들여다보면 솔잎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황수상 대표는 “솔향이 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솔 향은 알코올화 하여 가열하고 나면 모두 사라지고 그보다 잡균을 막아주는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즉 솔잎을 사용하면 합성 방부제를 따로 첨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호산춘은 걸려서 떠내는 과정이 아닌 짜내는 방법을 쓰는데 이때 솔잎이 술 찌꺼기와 엉켜 붙어 중요한 필터 층 역할을 해준다고 했다. 


쌀을 주재료로 하는 술들은 첫 맛이 비슷하다. 때문에 중간맛과 끝 맛으로 맛을 비교해 보아야 안다. 황수상 대표는 “호산춘은 저가의 사케로 구분되는 정종과는 그 맛이 확연히 다르다”며 “좋은 원재료에 어떤 누룩을 쓰고 어떤 미생물이 작용하느냐에 따라 맛을 달리 내게 된다.”고 자부했다. 숙성기간은 2개월 반에서 3개월, 알코올 도수는 18도다. 


술 한 되에 쌀 한 되

양조장 시설은 최신식이나 주조 과정은 여전히 재래식이다. 기계보다 사람의 손을 더 필요로 한다. 현재 호산춘에는 황수상 대표 혼자 술을 빚고 있다. “아버지는 제작년에 작고 하셨고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시다. 직원들을 구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한다.” 때문에 지금은 대량으로 만들어서 판매하기보다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양만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판매 수익금이라고 해봐야 재료비의 10%, 술 한 되를 만드는데 쌀 한 되가 필요하다고 하니 크게 남는 게 없다. 조금 얻는 수익금은 모두 양조장 운영에 재투자 된다. 황수상 대표의 생계는 강연과 컨설팅 등 주조 외의 수익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황수상 대표는 꿈 많은 건축학도였다. 그러나 종손으로서의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난 2010년 문경으로 내려왔다. 부모님 밑에서 호산춘의 주조법을 익히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시작 되었는가’ 하는 뿌리와 근본에 대해 배웠다. 지금은 호산춘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며 누구보다 자긍심을 가지고 이 일에 전념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너무 힘든 나머지 학창시절에도 하지 않던 가출을 세 번이나 했다고 회상했다. 

우리의 것을 지키고 보다 더 발전시키기 위해 오늘도 발효균을 배양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황수상 대표는 “호산춘을 좋아하는 단골 고객을 위해서도 집중을 다해 최고의 맛을 지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택의 앞마당에 하얀 꽃을 피운 탱자나무가 고택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올 가을 노란 열매가 익어갈 때 즈음 다시 한 번 방문해 그리운 호산춘에 또 한 번 취해보아야겠다. 

b6f0158f58e270af1d54e93385fc2075_1574177924_734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