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도 피해가는 천혜의 지리, 금강 줄기가 만들어 내는 비옥한 토지, 작지만 사람이 살기 더 없이 좋은 고을” 금당영농조합법인 박재형 회장은 서천을 그렇게 자랑했다. 서천은 충남 해안의 가장 남쪽, 서해바다와 금강을 끼고 위치해 있다. 한산 모시와 한산 소곡주가 유명하고 낭만의 해변 춘장대 해수욕장이 자리한 곳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또 하나의 명작이 있으니 바로 순수 국산 품종 삼광벼로 재배한 쌀 ‘서래야’다. 서천에서 서래야가 유명해진 것은 ‘풀을 먹고 자란 건강한 쌀’이기 때문이다. “쌀이 풀을 먹었다고요?”, “아니 쌀이 풀을 먹나요?” 기자의 의아한 질문에 박재형 회장은 녹비작물을 이용한 농법으로, 헤어리베치 비료가 가장 많이 나오는 풀을 재배해 그 풀을 거름으로 삼광벼를 키워낸다고 설명했다.
순수 국산 품종 삼광벼를 이용한 ‘서래야’ 쌀
삼광벼는 품종 중에서도 키우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서해안 일대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는데, 낟알이 많이 열리지 않아 작은 면적에 다량을 재배하고자 하는 농가들은 꺼리는 품종이다. 또 키가 큰 편이어서 태풍이나 강풍에 쓰러질까 노심초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광벼를 고집하는 이유는 양보다 질을 우선하자는 충남도의 농업정책 때문이다. 영양가 없는 다량의 쌀 보다 적게 열리더라도 우수한 품질의 쌀을 키워내자는 게 목표다.
서천은 삼광벼를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태풍도 피해가는 곳인데다 금강이 자리하고 있어 가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서해안에서 불어오는 건강한 해풍에 맑은 물, 그리고 헤어리베치 비료를 이용한 유기농법이 더해져 국내 유통되는 쌀 중 가장 건강한 쌀이 되었다.
풀에서 나오는 ‘헤어리베치’ 천연 비료를 이용한 유기농법
서래야 쌀은 추수가 끝난 10월이면 논에서 자란 풀들이 새로이 파종을 하며 이듬해 논농사의 시작을 알린다. 한 겨울에는 풀들이 안 얼어 죽게 볏짚을 덮어줘야 하고 눈이나 비가 많이 내리면 물 빠짐이 잘 될 수 있도록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 박재형 회장은 “물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논에 물이 가득히 고이면 헤어리베치 영양분이 물에 녹아 없어진다는 것이다. 금년에도 모내기를 하는 5월 20일 까지 풀들을 키웠는데, 잘 놔두면 수박 덩굴처럼 자라 사람 키만큼 커진다고 했다. “이 풀들을 기계로 베어 갈아 논갈이를 하는데 풀과 볏짚, 흙이 잘 버무려지도록 서래질을 하고 발효가 되도록 해요. 그렇게 해서 토지를 먼저 만들어 놓고 모내기에 들어가요.” 때문에 서천에서 생산되는 모든 서래야 쌀은 단모작이 될 수밖에 없고, 제초제는 전혀 쓸 필요가 없어 안심할 수 있다. 벼가 자라는 상태를 봐 가며 농업기술센터가 지원하는 최소한의 화학비료만 사용하기 때문에 박재형 회장은 “서래야가 가장 건강한 우리 쌀”이라고 강조했다.
바다 건너 세계로 가는 ‘서래야’ 쌀
풀을 먹고 자랐다고 해서 이름붙인 ‘서래야’는 이미 2015년 전국 고품질 브랜드 쌀 평가 대회에서 우수 브랜드 쌀로 선정되었고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 충남 우수브랜드 쌀 평가대회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현재 국내 대형 L마트에 입점 되고 있고 전국의 친환경 학교 급식으로 안정적인 판로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서래야가 재배된 지 11년, 그 동안 국내를 넘어 호주, EU, 중국 등 세계 각국으로 연간 500톤 이상 수출하는 쾌거도 이루었다. 2017년에는 세계 최초로 서천 쌀 9개 품목에 할랄 인증을 획득, 말레이시아 수출 쿼터 물량 1000톤을 확보해 수출했다. 세계 각국에 서래야가 수출될 수 있었던 것은 경쟁국인 일본과의 경쟁에서 품질대비 가격이 좋아서다. 박재형 회장은 “너무 끈끈한 쌀 보다는 적당히 탱글탱글한 삼광쌀이 초밥 재료로 안성맞춤이었고 가격적 측면에서도 한국 쌀이 단연 매력적이다.”고 소개했다.
서천을 대표하는 금당영농조합법인
금당영농조합법인은 서천의 비옥한 토지 30만평에 6명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30만평을 6명이 재배 관리 할 수 있는 것은 논농사가 모두 기계화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논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밭작물로 옮겨가지 못하는 것은 고령화에 따른 일손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박재형 회장은 “논농사는 기계화가 되어 일손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지만 밭작물은 기계화가 어렵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요즘같이 인력을 구하기 힘든데다 농사짓는 이들이 모두 고령화가 되고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콩만 해도 따서 분리하고 골라내는 작업을 모두 사람 손이 해야 한다. 올해처럼 양파와 감자 등 밭작물이 넘쳐나면 값을 제대로 받지도 못한다. 박재형 회장은 고령화와 일손, 정부 보조금과 같은 근본적인 대안 책 없이는 밭작물로의 변경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10살 소년의 꿈 그리고 60살 대농의 꿈
박재형 회장은 가난하고 어려웠던 어린 시절 대농을 꿈꾸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농사짓겠다고 나섰다가 어머니의 만류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농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벼들이 자라는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야들이 하루하루 자라는 거 보면 얼마나 재밌는데요.” 그는 “벼가 익어가는 푸른 들판을 바라보면 마음이 탁 트인다.”고 했다. 그러던 중 우루과이 라운드 등 여러 가지 대비책으로 마련된 정부정책으로 좋은 땅을 저리로 살 수 있었다. 박재형 회장은 “지난 2001년 정부 정책을 잘 활용한 덕분”이라며 “당시 많은 농업인들이 안정화가 된 큰 계기였다.”고 말했다.
박재형 회장의 막내아들이 그의 뒤를 이어 젊은 농부로 활약하고 있다. 농업인들에게는 농업사관학교라고 하는 농수산대학을 졸업해 6년째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박재형 회장은 농업사관학교에 대해 “1년은 학술 이론 수업, 1년은 해외 연수 그리고 1년은 현장 실습으로 실용주의적 학문을 자랑하고 전액 장학에,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막내아들이 해병대 캠프에서 훈련받는 동안 지휘관과의 대화에서 “훗날 대한민국 최고의 농업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남겨 아들에 대한 대견함과 농업인으로서의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10살 대농을 꿈꾸었던 어린 소년은 60살이 되어 새로운 꿈을 꾼다. 박재형 회장은 서천의 ‘사랑나눔’, ‘이웃나눔’ 등 봉사단체를 통해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지금껏 이룬 것이 혼자 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오며 만들어 진 결과이기 때문에 이제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쌀 서래야가 자라는 물 좋고 공기 좋은 서천은 대농의 넉넉함으로 훈훈한 고장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