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한산 소곡주,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의 맛을 지키다. ‘술 익어가는 소리’ 구미영 대표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한산 소곡주,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의 맛을 지키다. ‘술 익어가는 소리’ 구미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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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소곡주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서 생산되어 오던 가양주다. 옛 백제의 땅으로 15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그 의미가 깊다. ‘술 익어가는 소리’ 구미영 대표가 제조하는 소곡주도 집안의 비법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 깊은 가양주다.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먹어본 사람들이 다시 찾는 곳이다. 맛있다고 함께 먹고, 맛이 좋아 선물하다 보니 구전에 구전으로 단골들의 수가 늘어났고 찾는 사람이 많아져 찹쌀과 누룩의 양을 늘리지만 해마다 없어서 못 파는 지경에 이른다. 구미영 대표가 이어 받았을 때 찹쌀 40마가를 술로 빚고 있었다고 한다. “그 동안 부모님이 재래식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손으로 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다 아프셨던 거죠. 두 분이 하시기에 40가마가 한계였던 거예요. 찹쌀을 불려 옮기는 일이며, 누룩을 만들어 담는 일까지...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작업이에요. 손님들이 많아지니까 일은 점점 많아 졌는데 연세가 드시니까 더 힘드셨던 거죠, 그래서 결국 제가 내려와 이 일을 전수 받게 됐는데, 최근에는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으로 일부 기계식으로 돌려 다행히 수월하게 더 많은 양의 술을 제조할 수 있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손녀도 맛있다고 벌컥벌컥 들이 킨 소곡주

‘술 익어가는 소리’의 소곡주는 구미영 대표의 외할머니로 부터 전수받은 비법으로 제조되고 있다. 구미영 대표는 “한산면에 외갓집이 있었는데 중학교 때 외할머니가 금방 만든 술이라며 아궁이에서 꺼내 맛보라고 한잔 주셨는데, 어린 나이에도 독한 줄도 모르고 맛있다고 벌컥벌컥 들이켜 취해버렸던 적이 있었다.”며 옛 추억을 소환했다. 외할머니는 당시 집안일을 돕던 인부들에게 한 잔 씩 주기 위해 집에서 술을 조금씩 담그셨다. 한 때는 쌀이 귀해 나라에서 술 만드는 것을 금지하기도 해 장롱 밑에 구멍을 뚫어 그 속에다 누룩을 숨겨가며 몰래 먹기도 하고, 땅 속에 묻어두고 몰래몰래 꺼내먹었던 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집안일을 돕던 인부들도 할머니의 손맛을 인정했다고 한다. 시원한 술맛에 반해 누구라도 일해 주러 오고 싶을 정도였다니 말이다.


“몸과 마음은 물론이고 양조장 또한 가장 청결한 상태에서 빚어야 한다.”

외할머니의 솜씨는 친정어머니에게 전수되었고 지금은 구미영대표가 바통을 이어받아 소곡주를 제조 중이다. “어머니가 외할머니에게 배우고 또 두 분이 함께 술을 빚으시는 것을 어릴 적부터 봐왔기에 낯선 작업은 아니었어요. 또 결혼해서도 부모님이 힘드실 때면 1년에 두 번이죠? 술을 빚을 때마다 내려와 도와드리곤 했어요. 어머니는 가장 중요한 것이 청결이라고 강조하시고 늘 몸과 마음을 바로하고 술을 빚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죠.” 비법과 노하우는 부모님에게 전수받았지만, 술이 만들어 지는 이론과 과학적인 논리는 농업기술센터의 교육을 통해  또 알아가고 있다. “소곡주를 만들다 보니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더라고요.” 구미영 대표는 그 열정을 이어가고자 지난 1월 농업대학교 누룩학과에 지원해 학업에도 매진중이다. “배우면 배울수록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더 감탄하게 되더라고요. 기술과 이론을 잘 습득하고 배워서 나라를 대표하는 소곡주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산 소곡주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구미영 대표의 포부가 남달랐다. 


이 맛을 알면 이것만 찾는 단골들

한산면에는 소곡주를 만드는 곳만 60여 곳이 넘는다. 같은 재료, 같은 비법으로 만들지만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 집집마다 장맛이 다른 것과 같은 이유다. 만드는 사람의 손맛과 정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구미영 대표를 지도하며 함께 소곡주를 제조하고 있는 그의 친정어머니 류행정여사(75세)는 남의 집 것을 팔아주고 싶어도 맛이 달라 팔아줄 수도 없다고 말했다. “명절 때는 주체를 못 혀. 여기저기서 달라고 아우성인디, 다 팔고 없는 걸 워쪄. 다른 사람 꺼라도 사시오 하고 팔아 줬는디, 담부터는 그러지 말래. 없으면 그냥 팔지 말래. 우리 꺼 아니면 안 먹는다는 디. 가을 추수해서 빚고 봄에 빚고 1년에 두 번 빚어 숙성시켜 파는 디. 단골들이 이만치 있응 께 이만큼만 맹글면 되지 혀도 또 모지래. 워절쑤 없어~” 구미영 대표의 아버지는 냄새만 맡고도 술이 제대로 인지 아닌지를 알아낸다고 했다. 집에서 누룩을 만들어 쓰다 간편하게 해보겠다고 좋다는 누룩을 받아 섞었는데 아버지가 대번에 아니라고 호되게 나무랐다는 것이다. “아마 저희 집 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맛에 길들여진 부분도 있을 거예요. 아버지가 이 맛이 제대로 라고 판단하시는 것처럼 말이죠.” 구미영 대표는 자신의 소곡주가 최고라고 자만하지 않았다. 술도 음식이기에 입맛에 맞는 사람이 있고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입소문으로 판매해 사남매를 키워 낸 부모님 실력이라면 그래도 이곳 한산 소곡주를 대표할 수 있는 술이라 할 만하다고 자평했다. 


100% 국산 찹쌀과 우리 밀 누룩으로 만드는 살아있는 약주

‘술 익어가는 소리’에서 생산되는 소곡주는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 100% 국산 찹쌀과 우리 밀 누룩, 정제수를 넣어 만드는 순수 옛날식이다. 예전에는 막걸리처럼 색이 탁했다면 최근에는 거르고 가라앉히는 작업을 오래 해 맑고 깨끗해 졌다. 그럼에도 단골들은 진하고 깊은 맛이 우러난다고 평가를 한다. 알코올 냄새가 없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데다 단 맛도 스친다. 독한데도 독한 줄 모르고 먹다가는 일어나지 못해 ‘앉은뱅이 술’이라는 이유를 이해하기도 한다. 또 멸균을 하지 않아 발효균이 살아있어 진정한 약주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술과 달리 반드시 냉장보관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한기한은 100일이다. 


류행정여사는 인터뷰가 끝나자 양조장을 둘러보라고 했다. 얼마나 청결한 곳에서 술이 빚어지고 익어 가는지 눈으로 확인하라는 것이다. 청결을 가장 중요시 하는 류행정여사의 목소리에는 오랜 세월 술을 빚어온 장인(匠人)의 정신과 의식이 서려있었다. 그의 딸 구미영 대표도 어머니 못지않게 청출어람 하여 한산을 대표하고 세계가 인정하는 소곡주를 빚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