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서 ‘장수’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오래도록 삶’이라고 적혀있다. ‘고령화’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노인으로서 썩 많은 나이, 또는 그런 나이가 된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장수’와 ‘고령화’는 결국 같은 말이다. 그런데 왜 ‘장수’라고 하면 긍정적인데 ‘고령화’라고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하게 오는 걸까. 서산실버빌요양원(서산시, 갈산동) 이형길 원장은 ‘편견’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신도 모르게 생겨버린 편견이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요양원에 대한 오해와 편견
요양원을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를 직접 봉양하지 않고 요양원에 맡겨버리는 이들을 질타하는 소리인데. 이 원장은 이 또한 편견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양원은 신체적 노화로 인해 거동이 불편하거나 가정에서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 시설에서 대신 돌봐주는 곳이 요양원이다. 미디어에서 문제시 되는 요양원은 극히 일부인데,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생각하는 것이 오해와 편견이다,”고 말했다. 이것은 장수와 고령화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과도 같다.
이 원장은 ‘고령화’와 ‘요양원’을 ‘장수’와 ‘복지’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요양원에 따가운 시선을 보낼 것이 아니라 우리 지역에 어떤 요양원이 있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 부모가 이용하다, 내가 이용할 시설이고 또 내 자녀들도 머물 곳이라면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이 원장은 “처음 요양원에 들어오시는 분들이 자신이 머물던 사회와 격리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데, 이곳에 와서 3개월만 지내고 나면 ‘집보다도 좋다’고 하신다.”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남은여생을 즐기며 보내 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요양원 프로그램 중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외출이다. 자신이 살던 마을과 분리 된다는 느낌이 없도록 서산 10경 등 지역의 관광지로 나들이를 가고 직원들과 함께 장을 보러 마트도 간다. 이 원장은 “어르신들이 평생을 살았던 마을인데도 좋은 곳을 이제야 본다고 하신다며 아주 좋아하신다.”고 했다. 그 외에 어르신들이 볼만한 내용이 있으면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러 간다. 요양원 내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어르신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참여하면 된다.
싸움도 生이고 情이다.
요양원의 하루를 둘러보면 낮 동안에 고스톱을 치며 놀기도 하고 티비를 보기도 했다. 할머니들끼리 언쟁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 또 맞장구치며 웃기도 했다. 간혹 싸우는 분들은 어떻게 관리가 되는지 궁금해졌다. 이 원장은 두 분이 자꾸 싸우셔서 한 분을 다른 방으로 옮겼는데, 다른 한 분이 따라가셨다고 했다. 싸우는 것도 살아있는 거고 정이라고 하셨다는 거다. 또 공용 거실 같은 경우 암묵적으로 누구누구 자리가 정해져 있는데. 새로 들어오신 할머니가 모르고 어떤 할아버지 옆에 앉았다가 할머니들 끼리 싸움이 난적 있었다고 했다. 이 원장은 어르신들이 그러시는 걸 보면 귀엽기도 하고 또 그러다 마신다며 기본적으로 몸에 힘이 없으시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싸우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서산실버빌요양원은 지난 2008년에 개원했고 지난해 리모델링 공사를 마쳐 쾌적한 환경을 자랑했다. 요양원에는 총 106명을 수용하고 있고, 요양원이 부설로 운영하는 주·야간 보호센터는 정원이 30명이다. 주·야간 보호센터는 일종의 노인 유치원이다. 등원하는데 거동이 불편하지 않고 야간에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가정에서는 주·야간 보호센터를 이용한다. 이 원장은 “주·야간 보호센터를 다니는 분들은 요양원에 들어오는 시기가 평균 연령보다 늦어지는 것 같다.”며 “집에서 티비만 보고 멍하니 집만 지키고 계시는 것 보다 시설에 들어 와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다보면 인지능력이 좋아져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요양원에 입소하는 평균연령은 남성의 경우 75세, 여성의 경우 85세라고 했다.
서산실버실요양원에는 면회실이 없다. 보호자, 시청관리자, 복지사 등 요양원에서 인증된 면회객이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요양원을 드나들 수 있다. 부모님의 식사가 궁금하면 식사시간에 방문해도 되고 저녁시간이 궁금하면 저녁에 방문해도 된다. 이 원장은 “이곳에는 복지사로 일하는 직원들의 부모님도 계신다.”며 “모두 내 부모 모시듯 하고 있고 또 훗날 요양원에서 노후를 보내게 될 때 내가 잘 대접받기를 바란다면 내가 먼저 잘 대접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원은 현금보다 물품이 더 좋아
정부로부터 피복비가 나오지만 현실은 내복 한 벌 사드릴 정도라고 했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외출을 나가야 하는데 제대로 된 외투가 없으면 난처하다고 했다. 내복 한 벌의 피복비로 외투구입은 언감생심이다. 이 원장은 미디어에서 불법 시설 보도 이후 시설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워진 것을 느끼고 후원금도 넉넉지 않다고 했다.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시설이 문제지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시설은 후원금이 들어와도 관리 공단에서 하기 때문에 시설이 마음대로 운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때문에 이 원장은 현금이 아닌 물품으로 받는 후원을 좋아했다. 주신다고 하면 한달음에 달려간다고 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어르신들의 외투를 몇 벌 받았다. 요양원에서 받았다는 증빙서류도 챙겨 드리고 기념사진도 찍고 온다. 감사한 마음의 표현이다. 이 원장은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시설에 대해 관리감독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며 “이는 누구 하나의 잘 못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올해 서산시노인복지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협회원들은 서산시 요양원 원장들이다. 협회는 노인복지서비스의 문제점, 대책마련, 해결방안 등을 상의하고 똑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서로간의 정보를 공유하는 장이 되고 있다고 했다. 협회장 임기는 2년이다. 이 원장은 “임기 동안 회장으로서의 임무를 다하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고 밝혔다. 보호자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가 하루의 피곤을 씻게 한다는 이 원장은 “어르신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올해도 성심성의껏 모실 것이다.”고 밝혔다. 또 “늘 열심히 봉사하는 우리 직원들에게도 잘하고 있다는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기 좋은 곳에 고즈넉이 자리한 실버빌요양원을 보며 전국에 딱 이만한 요양원들로만 가득찬다면 노후는 걱정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의 사회복지사 분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