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암의 눈꽃설화보살은 34세에 무속인의 길로 접어들어 12년간 무속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신의 기운 느끼며 성장해와
원래 불교 신자였던 눈꽃설화보살은 어린 시절 집안의 어른들이 신의 기운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저희 친할머니는 정식으로 무속인의 길을 걸으시진 않았지만 당산지기셨습니다. 고조할머니, 증조할머니 대대로 내려왔지요. 그러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대를 잇지 못하니 집안에 자꾸만 풍파가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40대에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지셨고, 집안에 우환이 많이 생기게 되었지요. 할머니가 소법당을 조성하시고 칠성기도를 하셨습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이러한 흐름을 누군가가 받들고 가야하는데 그것이 저에게 내려온 것 같습니다. 대학을 다 졸업하고 한참 뒤엔 34세에 무속인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러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눈꽃설화보살은 남다른 경험을 했다. “자꾸 무엇이 눈에 보였습니다. 어떤 날은 문득 누군가의 식구, 친구의 부모님, 지인의 죽음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집에서 오늘 누군가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그 사람의 얼굴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저의 이런 기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하고는 했는데 제가 그런 말을 하면 1주일 길면 보름 상간으로 그런 일이 정확하게 일어났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무서워지기도 했지요.”
10년간 절에서 기도생활 이어오기도
눈꽃설화보살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본격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정상적으로 앉아있지를 못했습니다. 자꾸 몸이 아팠기 때문이지요. 시름시름 앓고 열이 이유 없이 40도까지 오르고, 환청이 들렸습니다. 그때는 사실 마음속으로 이 길을 가야겠구나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로 쉽게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눈꽃설화보살을 살리기 위한 굿도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도저히 삶을 이어나갈 수 없었던 눈꽃설화보살은 마침내 부모님 몰래 전라도 보성에 있는 한 절로 향했다고 한다. “저희 큰어머니가 다니셨던 절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절에 끌렸습니다. 절에 들어서자마자 마당에서부터 대웅전에 들어갈 때까지 피를 토할 정도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 울음이 끝이 날 때까지 그곳의 주지 스님이 5~6시간을 기다려 주셨지요.” 이후 눈꽃설화보살은 그곳의 주지 스님을 보필하게 되었고 행자로 5년, 유발상좌로 5년을 지냈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불교에 대한 깊은 공부를 하며 기도를 한 눈꽃설화보살이지만 여전히 마음 속 답답함을 풀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눈꽃설화보살은 조계종에 정식 입적을 하고자 했고 마침내 입적 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운명이란 이런 것일까. 눈꽃설화보살은 비슷한 시기에 받게 된 어머니의 전화 한통에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했다. “입적통지서가 온 날로부터 일주일 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실신, 이어지는 응급실 방문, 남동생의 대형 교통사고, 중환자실 입원, 어머니의 하혈과 같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것을 말씀하시며 제 길에 대해 다시 한 번만 생각을 하면 안 되겠냐고 하셨습니다. 제가 뜻하는 모든 걸 허락하겠다고 하시던 어머니였지만 그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저 역시도 판단이 서질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주지 스님께 상의를 하니 주지 스님 역시 그 길이 제 길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하는데 가족을 살려야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하산을 했습니다. 길을 걸으며 옥진공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고 그곳에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굿을 하기로 날을 잡으니 바로 남동생이 의식을 찾게 되었습니다.”
조상 문제 탁월하게 풀어내는 능력
눈꽃설화보살은 이렇게 무속인의 길로 접어든 후 우연한 기회로 첫 번째 상담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평상시 알고 지냈던 동네의 주민이었습니다. 인사차 들어오셨는데 제 눈에 무언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초상이 날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조심스럽게 한 남자분이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계신데 조만간 가실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쓰러지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며, 산소가 들어온다는 것, 두 개의 산소가 합쳐지는 것이 보이는 것을 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께서 얼마 전 조부모님 묘를 합장했고, 이후 남편이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셨지만 처음이라 저도 어떻게 해야할 지 바로 해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눈꽃설화보살은 이후 신어머니에게 연락을 하여 상황을 말씀드렸고 도움을 청했다. “신어머니께는 그 분의 가세가 기울어 굿을 하기에 힘든 형편이라고 말씀하시며 기도를 통해 할머니에게 응답을 받아보라 하셨습니다. 며칠 간 기도를 드리다 그 집의 산소가 정확히 반으로 쪼개지고 무수한 벌레들이 있는 것을 보았지요. 산소에서 무언가를 풀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신어머니께 말씀을 드렸고 저에게 상담을 하신 분에게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날을 잡고 할머니께서 일러주신 소액의 비용을 법당에 올려놓으니 법당에서 벌레가 자꾸만 나왔습니다. 마치 산소의 무수한 벌레들과 같은 형상이었지요. 역시나 산소에 직접 올라가보니 정말 수많은 벌레들이 시커멓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신아버지와 신어머니의 도움으로 조상들을 불러 고하셨고 문제를 풀어냈습니다. 눈앞에 펼쳐졌던 이미지들이 실제로 이루어졌고 그러고 나니 무덤 위의 벌레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다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상담자의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깨어나 바로 퇴원을 하게 되었다.
무척 어려웠지만 큰 공부이자 숙제가 되었던 이 일을 통해 눈꽃설화보살은 마음가짐에 대해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 “정말 간절함이 있어야하고 절실한 마음을 가져야만 기도가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뢰를 하시는 분의 믿음, 신에 대한 믿음, 이 일을 풀어내겠다는 간절함의 세 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굿을 해서 푸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곳에 오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지닌 간절함, 꾸준함, 그것이 이어지는 과정들이 중요합니다.” 이후 12년간 꾸준하게 신도들이 눈꽃설화보살을 찾고 있다.
눈꽃설화보살은 신점을 본다. 예약 전화를 받으면 이미 감흥을 느낀다. “집안에 문제를 갖고 있는 분의 전화를 받으면 벌써 제 몸이 아파옵니다. 제 앞에 앉으시면 생년월일을 묻기 전에 아픈 것에 대해 묻지요. 느낌으로 그 집안의 조상이 어떤 상태이고 가족이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눈꽃설화보살은 조상에 대한 문제를 탁월하게 풀어낸다.
어려운 제자들 보듬고 돌보고 보살피고자
눈꽃설화보살이라는 이름은 천비궁 천상천설로, ‘천상천설’은 하늘의 천상에 눈꽃이라는 하명이라고 한다. “천비궁, 하늘의, 천상의 왕비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왕비인데 권세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밑에 있는 많은 자식들을 보듬고 돌보고 보살피는 의미입니다. 하늘의 눈꽃이라는 하명으로, 눈 안에 피어나는 강한 꽃처럼 항상 그 눈꽃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추위 속에서도 강한 의지를 가지고 꽃처럼 피어나 만인들을 살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눈꽃설화보살은 제자들을 끊임없이 살피고 돌보고 보듬는다. “이곳은 12년의 역사로 이루어진 기도 도량입니다. 어려운 제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요.” 눈꽃설화보살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제자들을 품고자 한다. 눈꽃설화보살은 월천암의 법사스님과 함께 이러한 제자들을 위한 터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제자들이 올라와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기도 도량인 이 터는 눈꽃설화보살과 월천암 법사스님의 눈에 특별하게 들어온 곳으로, 눈꽃설화보살은 이 터에서 팔공산의 갓바위 부처님의 형상을 보았다고 했다.
눈꽃설화보살은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을 거두어 그들을 보살피고자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 이상으로 그러한 일을 더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눈꽃설화보살은 오늘도 정성으로 기도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