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시 당당하게, 샐러리맨에서부터 CEO에 이르기까지 중국 연대 신명전기 김훈식 대표

항시 당당하게, 샐러리맨에서부터 CEO에 이르기까지 중국 연대 신명전기 김훈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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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전기 김훈식 대표는 중국에 온 지 올해로 꼬박 20년째라고 말했다. 그가 한국으로 치면 머나먼 험지, 중국 연대 땅을 밟게 된 동기는 비교적 단순했다. 가려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처해서 (구)신명전기의 총경리으로 90년대에 처음 중국에 들어왔다는 김 대표이다. 2005년도에는 중국에서의 사업을 기반으로 자신이 샐러리맨으로 근무하던 신명전기를 인수하기까지 한, 참으로 입지전적인 남자, 김훈식 대표. 이것은 그의 이야기이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나아가 다시 깨우다

산업용 전동기, 정리하면 ‘모터’를 주력으로 생산한다는 신명전기, 모터부터 감속기까지 다양하게 취급한다고 김훈식 대표는 부연했다. 중국 연대 공장에서는 인·가공 위주로 작업하고, 판매는 주로 한국 본사를 통해 한국 시장에서 이뤄진다고. 한국 본사와 중국 신명전기는 서로 동업자 관계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종업원은 현재 중국에만 90명 정도 두고 있으며, 90% 이상을 중국인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인건비를 1인당 평균 4천 위안으로 책정합니다. 우리 돈으로 7-80만 원 정도죠.” 사실 김훈식 대표가 신명전기 중국 총경리 자격으로서 처음 중국에 왔을 때만 해도 인건비가 참 저렴한 편이었다고. 그에 비교하면 인건비가 참 많이 오르기도 올랐지만,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사실 2005년도에 그가 신명전기를 인수했을 때, 신명전기의 실적은 내리막을 걸어, 종국에는 문을 닫기 일보직전에까지 내몰려 있었다. 그랬던 회사를 인수해서 다시금 회생의 날개를 단 것이 바로 김훈식 대표였다. 그러니까 그가 신명전기 중국 지부만을 인수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본사까지 몽땅 인수했다는 뜻이다.


김훈식 대표의 신명전기 인수 과정은 참으로 드라마틱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회사, 청산되면서 회사의 잔여재산이 그동안 일했던 근로자들을 위해 퇴직금 대신 지급이 되었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바로 그것을 김 대표가 인수한 것이다. 이후 한국 본사의 일은 동업자에게 맡기고 김 대표는 곧바로 다시 그가 근무하던 중국으로 넘어왔다.


김 대표의 계획은 명확했다. 종래 IMF를 맞이하면서 가동률을 높였던 한국 공장의 규모를 최소한도로 줄이고 대신 당시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했었던 중국 공장의 생산 비중을 가능한 한 최대로 늘린 것이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 순이익을 늘릴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덕분에 예전보다는 상당히 상황이 나아졌다고. 인가공비만도 달에 2억이 든다고 하니, 가히 김훈식 대표가 가까스로 소생시킨 신명전기의 미래가 참으로 밝다.


일선 생산부터 기술 연구, 그리고 설계까지

어느 곳에서나 사업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느냐마는, 김훈식 대표가 체감하는 외국인으로서 타지에 나가 사업하는 일의 고충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우선 무엇보다도 전체 중국 신명전기 임직원의 9할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인 직원들과의 의사소통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언어도 언어지만 문화적 특이성이 잘 겹치지 않는 것도 큰 애로사항이다. 이 때문에 직접적으로 근로자에게 김 대표가 지시를 내릴 수도 없을뿐더러 크고 작은 오해가 생기는 까닭이다.

따라서 주로 통역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는 김훈식 대표. 특히 중간 관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일선 근로자를 관리하는 방식을 가장 선호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언어가 통하고 문화적 배경이 유사한 현지인을 계선으로 임명하고 이를 통해 일선의 불평불만을 적절하게 수렴해서 근로자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 참으로 기민한 방안이라 하겠다.


김훈식 대표가 직면한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환경 개선이라는 미명 하에 공장을 가동하는 것조차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물품을 생산하고 나서도 문제가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 라벨이 제품에 붙을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것만으로도 한국 시장에 내놨을 때 고객들의 편견이 상당히 짙어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신명전기의 산업용 전동기는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자재와 기술진을 공수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명전기의 제품은 한국에서 반은 가공한 것이나 다름없는, 결코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값싼 자재를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객들이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훈식 대표의 말이다.

“이곳 신명전기 중국 공장에서 하는 업무는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래료가공이 주입니다. 주물 정도야 이곳에서 하지만, 주요 자재는 모두 한국에서 공수합니다.”

나아가 신명전기는 앞으로 더욱 정밀한 기술 혁신을 통해 최대 300마력의 프리미엄급 효율을 낼 수 있는 신형 전동기 개발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김 대표는 빼놓지 않았다. “시장 가능성은 아직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분명 수요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업에 종사한 지 올해로 꼬박 40년차, 기술 연구뿐만 아니라 설계에까지 직접 관여하는, 그만큼 일선 작업공에서부터 중간 관리자, 나아가 CEO의 역할까지 모두 도맡아 왔던 김훈식 대표이다. 누구보다 이 일에 정통한, 그야말로 ‘베테랑’인 것이다. 따라서 전문 기술자가 아닌 중국의 평범한 농민공들이 진정 ‘기술자’로 거듭날 수 있게끔 가르치는 ‘맞선임’의 역할도 그가 맡아 했다. 무엇보다도 안전사고를 줄이는데 노력을 기울였다고.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베트남 등지로의 공장 이전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가시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 현재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월 8천 대의 제품 생산량을 과연 숙련도가 떨어지는 동남아 공장의 노동자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힘들 때 가족의 곁에 있어주지 못해 한없이 미안한 가장이라는 신명전기 김훈식 대표, 힘든 일은 그만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가족의 당부를 매번 들으면서도 신체 정정한 동안은 계속 일하고 싶다며 마냥 웃고 만다고 전했다. 물론 중국의 자재비나 인건비 수준이 한국과 점점 차이가 없어지고 있는 만큼,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갈 날은 오지 않을까. 언제나 당당하게, 한중 양국을 오가는 샐러리맨의 신화, 신명전기 김훈식 대표의 내일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