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인(賢人)과의 만남은 언제나 흥미롭다. 세상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편견을 깨뜨려주고, 내면을 충만하게 하는 가르침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포천 성주사 주지인 원광법사의 만남 역시 그런 만남이었다. 화엄경을 바탕으로 깊고 오묘한 삶의 진리들을 너무나도 쉽고 간단하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아아’하고 깨달음에 탄식하게 만들었던 원광법사님의 말씀들을 옮겨본다.
‘자등명 법등명’이라, 스스로 연구하고 터득하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될 것
성주사 원광법사의 말씀에서 주요한 핵심은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었다. 이는 석가가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이기도 한데 스스로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부처님이 설하신 법의 등불을 밝히라는 것이다. 원광법사는 “부처님은 내 속에 계시다. 스스로 똑바로 터득하려 하고 공부하다 보면 자연히 지혜가 생긴다.”라며 스스로 깊이 연구하고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신의 도움을 받아 속세 사람들에게 점사를 봐 주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무언가를 알려주는 신들은 부처님의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신 내림을 받고, 신의 도움을 받으면 그 자는 신의 부하가 되고 만다. 죽으면 그 신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능력을 빌려줬으니 그 무리에 들어오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신을 모시고 살면 절대 안 된다.”
이에 원광법사님은 성주사를 찾는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상담도 해 주지만 돈 등으로 보답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자신들이 느끼기에 맞아서 감사하면 부처님께 인사하는 것으로 보시를 해 주면 된다고 했다. 자신은 신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을 알려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화엄경 깊이 연구해 세상에 진리 전해주어
원광법사는 화엄경에 여러 번 언급되는 ‘념념’(念念) 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도 깊이 성찰해 알게 된 진리에 대해 설명했다. 이 념념이라는 개념은 화엄경에 1670번이 나올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따라서 원광법사는 이 ‘념념’을 정확히 알아야 화엄경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도 전했다. “보통 사람들은 ‘념념’을 지금의 마음, 순간 순간의 마음과 생각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생각이 나오는 근원이 과연 무엇인가 살펴보자. 방정식으로 치자면 X다. 무언가가 있으니 념념이 나오는 것이다. 나무가 서 있으려면 뿌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뿌리가 보이지 않으면 굳이 알려하지 말라는 것이 나의 견해다. 인연이 되어 나오는 이 나무를 보고 ‘그냥 있다’ 하고 받아들이면 되지 그 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때는 원광법사도 ‘념념’, 지금 순간의 생각들이 심장에서 비롯된다고 여기기도 했다고 한다. 심장이 뛰니 피가 퍼지고, 뇌까지 피가 올라와 생각이 드는 것이며 수축되면 순간적으로 피가 빠지면서 념이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국에는 심장과 관계없이 념념이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원광법사는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움직이는 영상을 보기 위해서는 1초에 24번의 화상이 나와야만 가능하다. 그것이 과학적인 설명이다. 움직이는 것을 볼 때는 24번 이상 념념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장이 어떻게 1초에 24번 뛰겠는가. 고로 념념은 심장과 관계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면서 “결코 눈이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다. 심심무저(甚深無底, 깊고 심히 깊어서 바닥이 없다)해서 보이는 것이다. 화엄경에 이것이 나온다. 그러나 불교사전에는 이 말이 없다. 하도 답답해서 널리 알리고자 ‘심심무저’에 관한 노래도 만들었다. 모든 것을 미워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심심무저에서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화엄경에 집중해야 우리나라 불교 발전할 수 있어
이처럼 원광법사는 화엄경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화엄경을 부처라 생각한다. 3천 년 전에 완성된 이 경전이 어떻게 이렇게 세세하고 정확하게 인간에 대해, 또 부처님의 진심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가 있겠는가.”라며 ‘경 중에 경은 화엄경이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불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화엄경에 집중해야 한다고 전했다. 화엄경을 읽게 되면 선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광법사는 화엄경 100독을 발원하고 21독째 하고 있기도 하다.
원광법사는 “최근 ‘화엄학’을 중시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는 화엄경을 옛날 사람들이 읽고 자기 나름대로 분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화엄경과 인연 지어 놓으면 부처님과 인연이 지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공부를 해 보고 모르는 것은 그 때 필요한 것이 화엄학이다. 단지 해석하는 데 필요한 지침으로만 여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갑자기 종 소리를 들려주었다. 3번, 청아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이 종소리를 들은 것은 몇 명인가?” 평범한 필자는 방에 있는 두 명(본인과 원광법사)가 들었노라 답했다. 하지만 원광법사는 ‘들은 것은 한 사람뿐이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차근히 설명을 해 주었다.
“내가 종소리를 들은 것은 들어서 확실하지만 앞의 법사님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그저 생각하건데 들었을 것이라 판단한 것 뿐이다. 생각하는 것과 들은 것은 다른 것이다. ‘이 종소리 듣는 것 그 누구신가. 하늘에 땅에 오직 나 홀로 들을 뿐이다.’ 10사람이 있어도 10명이 들은 것이 아니다. 들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뿐.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이야기 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중생수와 부처수가 똑같다. 중생이 하나 나면 부처가 하나 나시는 것이다.”라는 설명이었다.
화엄경의 여러 어려운 내용들도 원광법사의 설명과 예시를 듣다보니 어렴풋이 손에 잡힐 듯도 싶었다. ‘념념’, ‘천상천하 유아독존’, ‘자등명 법등명’ 등 어려워만 보였던 불교의 말들도 이 세계를 제대로 알게 해주는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세상에 대해 불교에 대해 새롭고 깊이 있게 알려준 원광법사께 감사를 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