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은진보살은 외강내유(外剛內柔, 겉으로는 굳게 보이나 속은 부드러움)라는 말이 어울리는 무속인이었다. 내 놓는 점사는 확실하고, 단호했으며 말투는 호탕하고 거침이 없기에 처음에는 ‘강한 사람이로구나’라고만 여겨졌는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따스한 내면에 스며들었다. 사람들을 향한 마음과 걱정, 배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신도님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기도에 또 기도를 이어가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은진보살 그녀 자신도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인생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 아닐까? 힘겨웠던 시기를 지나왔기에 그 누구보다 지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줄 수 있는 청산 은진보살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독한 신병 겪어, 3년 째 누워만 있다가 무속인이 되기까지
은진보살은 벌써 20년째 무속인의 길을 걷고 있다. 서른네 살, 젊은 나이에 무속인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고난이 많았다고 한다. 신병으로 지독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과거였다. 은진보살은 “한 쪽 몸을 아예 쓰지 못했다. 몸을 일으킬 수 없어 3년가량을 누워서 생활했다. 밥도 먹지 못하고 몸이 말라갔다. 당시 몸무게가 34kg 정도였다. 머리도 다 빠지고 등뼈도 다 튀어나왔다. 흡사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새벽 3시쯤 되면 뱀 2마리가 배꼽에서 나오듯이 하는데 숨을 못 쉴 정도로 경련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그저 중풍인 줄로만 알았다. 병원에 입원도 해 봤지만 정확한 병명도 없이 그저 신경성이라는 진단만 받을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은진보살은 “돌이켜보면 모든 일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삼오제가 지나면서 시작되었다. 삼오제를 지내고 집에 들어오면서 현관문을 여는데 엄청 큰 손이 오른 쪽 어깨를 확 잡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뒤로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 잠결에 보면 빨간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나 오늘부터 너와 살란다’하고 오셨다. 전기가 2만 2천볼트 정도는 흐르는 듯 강렬한 고통이 전해왔다. 또 잠시 잠이 들어도 다른 할아버지가 산삼 몇 뿌리를 들고 또 ‘나 오늘부터 너와 살란다’ 하시면서 또 들어왔다. 이런 일을 오래 겪다보니 나중에는 눈을 뜨고 있어도 보였다.”고 전했다. 이런 일들이 몇 년간 지속되던 끝에 지인의 권유로 점을 보러 가고, 굿도 해 보고 진혼제도 해 보았지만 다시 또 같은 일이 벌어졌다. 결국은 무속인의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살 수 있는 운명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무당이 되고 난 뒤에야 모든 신체적인 고통은 사라졌다.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이어 내려오는 강한 신줄
아마도 신께서 제자로 삼기 위해 시련을 주신 것이었으리라. 인간 세계를 돕게 하고자 원력이 강한 만큼 지독하게 시험하신 것은 아닐까 짐작되는 부분이었다. 사실 은진보살은 대를 이어 강한 신줄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조할아버지께서는 아직도 남아있는 ‘백년암’이라는 절에 계셨던 도사이셨고, 할아버지께서도 법사의 삶을 사셨다. 윤보선 전 대통령이 ‘신흥사’라는 절을 지어 주셨을 정도로 덕망이 높았던 분이다. 이모 역시 수덕사 지주이셨다. 모친 역시 무당이었다.
무속인의 길에 들어서고서도 개인적인 난관과 눈물 많은 사연은 이어졌다. 평택 지역에만 건물이 8채였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했지만 한 순간에 날아갔다. 기도에 전념하다 보니 아이들과 재산을 남편에게 부탁했지만 1년 만에 모두 잃어버린 것. 그녀는 작은 단칸방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그저 기도에 매달렸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겨운 시간을 겪으며 들어선 무속인의 길이기에 그녀는 ‘죽을 목숨을 살려주셨다’ 생각하고 기도하며 살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제는 신의 도움으로 아이들 모두 결혼까지 시키고 개인적으로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신도 위해 험한 곳에서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
은진 보살은 “이제는 오로지 신도님들 걱정뿐이다. 요즘에는 경제적으로 힘든 분들이 많다. 갖가지 직업이 있고 여러 분야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한 분 한 분이 아픈 손가락이다. 모두 다 해결해 드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시험 보시는 분들은 내가 문 앞에 지키고 있고 싶고 시험관이 되고 싶기도 할 정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으니 기도에만 매진하고 있다. 신도님이 하루하루를 편안하게 조금씩이라도 일궈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소원이다.”고 전했다.
기도도 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해 하는 편이다. 그녀는 “한 번도 따뜻한 곳에 가서 편하게 기도해 본 적이 없다. 신도님들은 ‘두더지’처럼 기도한다고 하는데, 땅을 깊숙이 파고 그 위에 비닐을 치고 마치 두더지처럼 그 안에 들어가서 기도를 드린다.”고 설명했다. 신도들을 위해 꽉 차 있는 것을 비우고, 새로운 영기를 받아 오려는 의식이다.
특히 부동산 쪽으로 영험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 은진보살은 “매매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운세에 맞춰서 다 팔아드린다. 굿도 해서 잘 맞춰 드린다. 지난해에도 굉장히 큰 땅을 잡아서 높은 가격으로 분양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렸다.”고 사례를 설명했다. 신병으로 아파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같은 이유로 아픈 사람들의 치유도 돕고 있다.
은진보살은 자신은 신령님의 복이 많다고 말한다. 법당의 할아버지가 살아있는 분처럼 내려다 보고 계실 때가 많고, 기도하면 들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피시고 도와주시는 신령님의 힘으로 오로지 신도들만을 돕다보니 신도 수도 천 명을 넘길 정도로 많다. 20년 이라는 세월을 무속인으로서 사랑 받아오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힘들었던 과거를 딛고 많은 사람의 아픔을 치유해 주고 있는 은진보살에게 다시 한 번 응원과 감사를 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