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에 답은 없다. 답도 없는 인생이 늘 무언가를 쫓기에 불안하고, 답답한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을 의지하듯 무속인을 찾는다. 제주도 조천면에서 간판도 없이 상담을 하는데 용하다는 입소문이 난 무속인이 있어 찾아보았다. 좋은 날을 ‘택일’하는데 특별한 능력을 발휘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길을 밝혀 주고 있는 무애심 선생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찾아 온 신의 부름을 버티고 버티다, 올해 음력 3월 13일에 신굿을 받았다는 무애심 선생을 찾아 무속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신병 앓아
무애심 선생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신에게 특별한 기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관을 끌고 가는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이 얼마 후 운명을 달리 하는 현상을 경험하면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를 나아 주신 엄마가 미국에 계신다는 것을 안 후 경찰서 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엄마를 찾았는데, 신기의 줄력이 친엄마네 집안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친할머니 또한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유명한 사당에 모셔진 마지막 손녀라는 것을 이 길에 들어서면서 알게 되었다. 신랑의 할머니도 해남에서 꾀나 유명한 무속인이었는데, 지금은 어르신들 모두 교회에 다니고 계신다. 나 역시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알린다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상황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몸이 아프고, 하는 일마다 실패를 하는 고난을 겪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점집을 찾아다니며 하소연을 하는 일이었다. 스무 살 되던 해, 점집이라는 점집은 다 찾아 다녔지만, 그 어느 누구도 무속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 주는 이가 없었다. 점집을 찾아 어떤 방안을 찾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같이 “넌 이길 안 가도 돼!”라는 적잖은 무관심이었다. 당시 점집에서 말하는 대로 그녀는 자신의 몸에 실린 신기를 누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럴수록 몸은 더 격하게 저항을 하면서 통증을 안겨 주었다.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말문을 막으려고 입을 쥐어뜯느라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몸이 아파 홀로 몸부림을 치면서 희망의 닻을 내렸던 무애심 선생은 급기야는 귀신을 쫓는다는 목사를 찾아 교회로 발걸음을 하기도 했다.
그 길을 가지 않기 위해 신병을 치료한다는 목사님을 만나 시도를 해 보았지만, 7명의 목사님들조차 그녀의 몸을 강단으로 이끌어 내지를 못했다. 몸이 안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결국 신병을 치료하기로 유명한 목사님조차 그녀의 병을 고치지 못했다. 대신 당시 불교신자였던 시어머니를 교회로 인도를 했고, 아직까지 시어머니는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신병 누르려 밴드 싱어로 활동
해가 바뀔때마다 선몽을 꾸는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신병을 누르기 위해 별별 짓을 다했다. 밤무대 밴드에서 여성 싱어로 활동을 했는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입을 올렸다.
전업으로 싱어를 하면서 그녀는 부업으로 옷가게를 했고, 옷가게를 하다가 그간 모았던 재산을 모두 잃게 되었다. 사채 보증을 섰다가 부도가 난 것이다. 전 재산을 모조리 잃은 그녀는 일 년 동안 소금 간을 한 밀가루 반죽만 끓여먹었을 만큼 힘든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동안 고생해서 모은 재산을 모두 잃어버리고, 건강도 악화되자 세상을 지탱할 의욕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술이라면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했던 그녀지만, 소주 한 팩과 칼을 들고 바닷가로 갔다. 세상을 등지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때 눈을 떴는데 하얀 빛이 보였다. 나는 그곳이 천국이라고 생각을 했다. 내가 드디어 죽어서 천국에 온 것이라고. 그런데 그곳은 형광등이 밝게 켜진 병원 입원실이었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 나는 그 때부터 피부 관리와 마사지 공부를 했고, 닥치는 대로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시험만 보면 전부 합격을 했고, 졸지에 국가 자격증을 10개나 획득하게 되었다.”
그 후 마사지와 피부 관리를 하면서 사람의 기운을 주고받았던 그녀는 기계도 쓰지 않고 사람을 만지면서 한 마디 씩을 툭툭 던졌는데, 그것이 적중을 했고, 그러다 보니 정말로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마사지를 받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니 돈은 정말로 많이 벌었는데, 또 다시 모조리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인간 구제의 초심을 잃지 않는 무속인이 되겠다는 각오
무언가 일을 시작해서 잘 될 만하면 사기를 당하거나, 몸이 아파 드러눕는 일이 많았던 그녀는 방법을 간구하기 위해 또 다시 점집을 찾아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칼과 불을 쓰면 이 길을 안 가도 된다는 말을 들었고, 38세에 결혼을 한 이후 식당을 시작했다.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사람들이 들어오면 한 마디 씩을 툭툭 던졌는데, 그게 그렇게 잘 맞아서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을 하고 나면 아파서 드러눕곤 하니 우리 신랑이 그렇게 싫어 할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무속인인 할머니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안 하려고 해도 자꾸만 입 밖으로 예언이 튀어 나왔다.”
그렇게 식당에 찾아 왔던 지인들의 앞길을 터 주자, 돈을 번 지인들이 그녀를 만나기 위해 줄을 이었다. 지인들의 간곡한 부탁에 남편 몰래 앞길을 터 주었고, 결국 그녀는 그런 지인들 중 한 사람의 돈을 빌렸다가 억울한 수감자가 되어 18일 동안 구속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 단, 18일 동안이었지만, 그녀는 교도소에서 매일매일 108배를 하고, 경문을 읽었다. 그러자 많은 수감자들이 그녀에게 몰려들었고, 상담을 하면서 세상을 배울 수 있었다.
세상은 선과 악의 조화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처럼 교도소 생활은 무애심 선생의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경험을 안겨 주었던 시기였다고 전한다. 결국엔 긴 여정을 돌고 돌아 교도소에서 만났던 한 지인으로 인해 지금의 건령사 신엄마를 만났다.
그녀를 보자마자 신엄마는 대뜸 “너는 이 길을 가야하는 제자다.”라는 말을 전했다. “신랑의 권유로 내림굿을 결정할 수 있었다. 마음의 결정을 하고 신엄마를 찾아 갔을 때 무속인이 되어야 하는 내 운명을 그 분이 알아주고 품어 주시는데 막 눈물이 쏟아졌다. 나만 아는 설움과 역경을 안 그 분은 세상에서 네가 할 일은 없다면서 오로지 이길만이 너의 길이라고 하셨고, 내 생일 전에 내림굿을 해 주셨다.”
신굿을 받고 바로 말문이 터졌다는 무애심 선생은 비로소 자신의 길에 들어 온 후, 평생따라 다녔던 지병이 씻은 듯 나았으며 우애가 나빴던 여동생과도 사이가 좋아졌다.
신엄마와 (건령사 김경옥 보살) 같은 착하고 선한무속인이 되겠다는 무애심 선생은 인간 구제를 위해 신이 자신에게 실어 준 능력을 올바르게 발휘하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