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의 남쪽 끝 남대동 1,182고지에 있는 상원사는 신라 시대에 세워진 고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사찰이다. 강원도 전통 사찰 제18호, 유형문화재 제25호로 등록된 이곳은 조선 시대 왕들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던 기도처였고 지금도 그 영험함에 많은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차장에서 상원사까지 2.8km, 숲 어딘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바위틈을 따라 졸졸거리는 물줄기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나그네를 반겼다.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게 해주는 산길을 따라 1시간 30여 분 오르니 경치가 절정을 이루는 곳에 상원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최고의 명당이라 할 곳.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상원사는 산 아래 펼쳐지는 능선의 절경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로 불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원성취 이루는 조선 왕실의 기도처
대웅전을 중심으로 심우당, 심검당, 산신각으로 배치된 가람들 사이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와 함께 마음이 차분해졌다. 어지러운 마음조차도 절에 오면 어느샌가 소멸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법력이련가. 부처님과 이곳을 수호하는 신장들의 호위로 내 마음의 잡념과 상념들도 사라져버리는 것이리라. 그 영험함을 알기에 많은 불자들이 이곳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12년간 끊임없는 불사로 이곳을 지키고 있는 고공 스님은 몸이 아픈 사람들, 사업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이 찾아온다며 산신각 천장에 매달아 놓은 19개의 일 년 연등은 접수가 시작되기도 전에 신청이 끝난다고 말했다.
“등을 달고 소원을 빈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신심으로 빌고, 바른길을 간다면 그 원력으로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될 것입니다.”
스님은 상원사에 대해 고려의 시발점이요, 조선의 운기를 담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고려를 이끌고자 했던 궁예의 시작도 이곳이었고, 조선을 창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무학대사도 이곳의 터를 영험하게 보고 조선 왕실의 기도처로 꼽았으며 태종 이방원도 어려서 이곳에서 공부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많은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러한 영험함과 신통함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케이블카가 간절한 상원사
절에 오르며 무청과 찬거리를 잔뜩 실어 나르는 지게꾼을 보았다. 어디 가시는 길이냐고 물으니 상원사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절에 다니시는 처사님들이 오실 때마다 필요하다 싶은 것을 날라 주세요. 다행히도 이 절에는 처사님들이 많아서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관광지 개발 차원에서라도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원주시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도 되고 우리도 짐을 좀 수월하게 나를 수 있을 텐데, 여기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어서 개발이 안 되는 게 좀 안타깝죠.”
힘든 산을 오르며 지게꾼 역할을 하는 처사들의 공덕에 산신각의 산신께서도 깊이 감명하시리라. 80이 넘은 노 보살들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상원사를 찾아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잃어버린 땅을 찾아서... ‘탄원서’ 올려
고공 스님은 잃어버린 상원사의 옛 땅을 찾고자 애쓰고 있다. 일제에 빼앗겼다가 광복 후 다시 상원사가 관리해 온 땅인데, 1972년 유적지인 원주 감영에 주소를 둔 유령 단체에서 임야관리 조합을 내세워 상원사 땅을 원주시 땅으로 흡수해 버렸다는 것이다. 스님은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최근 탄원서를 써서 올렸다고 말했다.
“1300년을 넘어 치악산을 지키고 원주시와 원주 시민을 위해 기도하던 곳을 원주시가 맹지로 만들어 가져갔어요. 지금 여기서 300m 거리에 몇백 년 된 스님의 부도가 있고 지금까지 상원사가 관리해 온 견성암이 있고, 또 기도하던 토굴, 절에서 농사를 짓던 밭, 이런 곳을 자세히 조사도 하지 않고 맹지로 만들어 (원주시로) 흡수시켜 버렸으니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지요. 당시에 모르고 그랬다면 다시 고치는 것도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이고요.”
스님은 원주시가 시민들의 재산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며 이러한 내용을 담은 탄원서를 신도님들과 함께 작성해 올렸다고 말했다.
상원사의 옛터가 다시금 이곳으로 돌아와 번창할 수 있기를 바라며 법당으로 향하는 스님께 합장하고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면서도 다시금 찾아 오르고 싶게 만드는 이끌림에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진 상원사를 그려보았다. “불법승에 귀이하고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힘든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탐진치를 끊어내고 불도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 스님의 법문을 되새기며 정화된 마음으로 세속에 다시 몸을 담근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힘차게 살아갈 좋은 기운을 가득 싣고서 말이다.
다음은 탄원서 전문이다.
< 탄원서 >
치악산 상원사는 천년고찰로서 원주시 신림면 성남로 930번지에 있습니다. 일제 전에는 상원사 주위 전체가 상원사 땅이었다고 합니다. 일제를 겪으면서 1060번지 외에 일제의 힘에 의해 빼앗겼습니다. 일제가 끝나고 계속 상원사 땅이라고 관리를 계속해왔습니다. 몇 분의 노보살님들께서 상원사 땅이라는 증인을 서 주시고 계십니다.
1972년 9월 12일 원주시에서 조선 시대 유적지인 원주 감영에 주소를 둔 유령단체 임야관리 조합을 내세워 원주시 땅이라 등록하고 1972년 9월 30일 5만9,800평을 상원사 땅이라 등록하였습니다.
1300년을 넘어 치악산을 지키고 원주시와 원주 시민을 위해서 기도하던 곳을 원주시가 맹지를 만들어 놓았으며, 상원사로부터 300m 거리에 몇백 년 된 스님의 부도가 있으며 지금까지 관리해 온 견성암이라는 곳이 있으며, 토굴 터 농사를 짓던 밭, 터, 이런 곳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원주시 땅이라고 등록하였습니다.
원주시는 시민의 재산을 지켜주어야 하는 곳인데, 특별조치법을 악용한 유령단체를 만들어 등록하였습니다. 곳곳에 많은 땅을 등록하여 엄청난 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행정이 잘못되었으면 고치는 것이 공무원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아는 상원사 신도님들과 많은 분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탄원서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