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땅에 처음 문을 연 한식당, 그 숭고한 가치 중국 연대 화안그룹 서울한식당 이필숙 실장

연대 땅에 처음 문을 연 한식당, 그 숭고한 가치 중국 연대 화안그룹 서울한식당 이필숙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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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숙 실장이 처음 중국에 온 때는 94년도. 한국 모 회사의 이사로 있었던 남편의 업무상 사정으로 이곳 연대 지역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되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임원의 비서로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던 이 실장 역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중국으로 떠났다. 모든 게 낯선 환경, 덕분에 그 생경한 중국 생활은 참으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부족함 없는 환경이었지만 갑갑한 마음을 이기기 위해 이필숙 실장은 자진해서 장사의 길로 나섰다. 당시엔 대표였다. 연대 사람들의 주식이 빵이라는 사실에 착안, 처음에는 빵집을 해보려고 계획했었다는 그녀. 빵집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기술투자를 받아 진행하려 하였으나 ‘아직은 시기상조다’라는 말을 듣고 좌절했다. 그러나 이 실장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이 지역에 단 한 곳도 없었던 한국 식당, 바로 그 불모지에 처음 도전한 것이다.


우연히 마주한 기회, 인생이 바뀌다

타고난 커리어 우먼이었던 이필숙 실장이었기에 사실 그녀에게 있어 요리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결혼하기 전 잠시 신부 수업을 위해 배웠던 요리 기술을 살려 생경한 도시, 중국 연대에서 한식당을 열었다. 하지만 그랬기에, 더욱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그녀는 털어놓았다.

그렇게 이필숙 실장이 처음 도전한 한식당의 이름은 ‘한국관’이었다. 바로 그 한국관을 거쳐, 오늘의 서울한식당이 태동하게 된 것이니, 가히 서울한식당의 전신이라 할 만하다. “식당을 운영한 지는 올해로 꼬박 22년차가 되었습니다.” 이필숙 실장의 말이다. 거의 16년 가까이 직접 경영하고 운영하던 식당, 그러나 식당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이 실장은 또 다른 도전을 선택했다. 바로 중국 굴지의 대기업 화안그룹 휘하의 마케팅부 실장으로 들어간 것. 그녀가 뛰어든 화안그룹은 2000년에 이국안 선생이 처음 문을 열었다. 창업한 지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 세계 서비스 일류 기업”이란 슬로건과 함께 숱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만큼 앞으로 나아갈 길이 더욱 형형한 기업이 바로 이 화안그룹인 것이다.

서울한식당이 자리한 화안국제호텔 역시 연대 개발구 내에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식사를 하면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입지조건은 특히 이곳의 빼어난 자랑거리다. 바로 이러한 호텔 1층, 메인 로비을 빗겨 끼고서 당당하게 이필숙 실장의 한식당이 자리해 있다. 점심시간에는 일견 합리적인 가격대를 선보이다가도 고객의 취향을 백분 공략한 건강 가득 맛도 일품 고급 한정식을 내세운 것이 주효한 까닭이다. 오랫동안 이곳 서울한식당을 떠나 본 적이 없다는 그녀의 말처럼, 이필숙 실장의 가치는 이미 화안그룹 내에서도 정통하다. 이 실장 없이는 화안국제호텔 1층을 아로새긴 이 한식당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는 까닭이다.


22년 간 살아 온 중국 땅, 그 소회에 대해 기자가 묻자 그녀는 “처음 왔을 때보다 모든 것이 편해졌지만, 비자 발급 등이 점점 어려워져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밝혔다. 이 실장이 처음 연대라는 이름의 낯선 중국 도시에 왔을 때는 정말 하나에서 열까지 생소한 것들뿐이었다고. 한식당은커녕 한국 식자재조차 쉬이 구할 수 없는 곳이었다고 이필숙 실장은 전했다.

그러던 연대 지역이었지만, 점점 한중 양국 간 교류가 심화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 실장의 말에 따르면, 이제는 제법 한식당도 많이 늘어났으며 식자재를 구하는 것도 쉬워졌다는 것. 그러나 편해진 만큼 중국 당국의 법적 규제도 점점 강화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외지에서 서로가 서로를 돕지 않는다면

그녀가 ‘한국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식당을 열었던 당시의 연대 지역은 적어도 한인 사회만 놓고 보았을 때는, 참으로 정겨운 곳이었노라고 이필숙 실장은 회고했다. “식당이 지역 한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습니다, 다들 도와주려는 분위기셨고 덕분에 많이 성장했죠.” 이에 관해 당시 찾아주셨던 그분들의 감사함을 항시 잊을 수가 없다며 그녀는 웃었다.

이필숙 실장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이곳에 정주하는 동안 자신이 만났던 연대 사람들은 참으로 순수했다. 당시 이곳에 함께 살았던 한인들도 모두 정이 많고 따뜻한, 아낌없이 레시피를 나누고 서로 교류했던 진정한 ‘이웃사촌’이었다는 것. 그러나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옛말과 같이, 오해가 쌓이면서 그 정도 차갑게 식어 갔다며 그녀는 아쉬움을 표했다. 

여태껏 연대에 터를 잡고 사는 동안 중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모두 똑같은 ‘사람’이자 나의 ‘벗’이라고 생각했다는 이필숙 실장. 그랬던 그녀였기에 누군가를 얕보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종업원들에게도 행여 그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를 염려했고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종업원들에게 항상 한국인이든 조선족이든 중국인이든 우리에게는 모두 똑같은 고객임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사람의 지위나 성별, 국적이 결코 이곳의 음식을 먹는데 있어 불이익이나 이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이 실장은 분명히 했다. 


변화,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곳에 온 이후로 스스로도 참 많이 변했다는 이필숙 실장. 중국어로 사람들과 말하고 싶어서, 그렇게 마음을 나누고 더욱 가까워지고 싶어 중국어 공부도 하고 있다고 했다. 변화는 연대 역시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조그만 지방 도시였던 연대가 중국 당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거치며 급속도로 성장했다. 앞으로도 그 성장세가 결코 꺾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

물론 어려운 점은 분명히 있다. 가령 최근 한중 양국 간에 붉어진 가장 큰 난제, ‘사드 문제’와 같은 국제 정세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관해 이필숙 실장은 “결국 모든 사업이 정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라고 말하며, 또한 무엇보다도 타지에 나가 한국인이 서로 서로를 돕지 않는다면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더욱 요원해질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 명제가 지닌 힘을 믿는 서울한식당 이필숙 실장, 그녀의 밝은 미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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