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령사의 김경옥 선생은 전국에 30명이 넘는 제자를 두고 있다. 지금껏 묵묵히 타인을 향해 복을 짓다보니 따르는 제자가 많아진 것이다. 항상 남에게 베풀고 선행을 지어 신께 바치는 연습을 하는 것이 무속인들의 목적이라고 말하는 김경옥 선생은, 제자들에게 늘 선한 무속인이 되라고 가르친다.
무속인의 몸을 썩지 않게 지켜 주는 신께 선행을 바친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위급할 때 신이 구제해 주는 법이라고. 무속인의 길을 가는 것에 수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김경옥 선생을 만나 초심을 놓지 않는 무속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할머니로부터 신줄 받아
'모태 신앙'이 있듯 김경옥 선생은 '모태 신기'를 안고 태어났다.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그녀는 할머니의 기도로 공을 많이 들여 탄생한 인물이다. 유난히 그녀가 믿고 따랐던 할머니는 신기를 거부하자 양쪽 눈이 모두 실명되었다. 할머니가 신을 거부하자 선생에게로 신이 내렸고, 소아 관절염을 안고 태어나면서 자라는 내내 잦은 병치레를 하였다. 부모의 정보다는 눈이 안 보이는 할머니 곁에서 보살핌을 받고 자란 김경옥 선생은 7살 때 쯤 할머니와 함께 외출을 했는데, 그게 할머니와의 마지막 추억이 되었다고.
"어느 집에 환갑잔치가 열려서 할머니와 함께 음식을 먹고 개천가로 가서 모래찜질을 했다. 모래찜질 후 발을 씻으려고 물가로 가서 발을 담갔는데, 그 때 할머니가 익사로 돌아가셨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자 나를 물 밖으로 밀어내셨던 할머니의 거센 손길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할머니가 물에 둥둥 떠 계시던 모습을 목격한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내 기둥이 쓰려졌다는 아찔함과 상처를 안고 자랐다."
태아 때부터 신 내려 계속 잔병치레하며 자라
할머니 초상을 치르며 '수살 넋'을 건지기 위해 무당이 굿을 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는 선생은 어린 나이에 기이한 모습을 눈으로 지켜보았다. 누가 잡아끌어도 물에서 안 나오시던 할머니의 넋그릇이 자신의 친정엄마가 집에 가시자가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끌려 나왔던 것이다. 그 때부터 친정엄마의 행동이 꼭 할머니 같았다. 할머니가 하고 싶었던 말을 엄마가 다 토해 내는 것을 본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세상에는 기이한 기운이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서너 살 때부터 밥을 꿀꺽 삼키는 것조차 어려워했기에 잦은 병치레가 따랐고, 그러한 선생을 위해 집안에는 늘 군용 건빵과 원기소가 스텐 밥그릇에 담겨 있었다. 오며가며 그것만 콩 주워 먹듯 하나씩 집어 먹었던 것이다. 한 번은 다람쥐를 보고, 저거 고기다, 잡아줘, 라고 아버지에게 말했더니 뭐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이었던 부친이 다람쥐를 잡아 구워 주었던 적도 있었다. 다람쥐고기만큼은 맛있게 먹던 선생을 위해 부친은 다람쥐만 잡으러 다녔다고 한다.
열일곱에 영매 푸는 천리 얻어
고1때 가장 많이 아팠던 선생은 햇빛만 보면 쓰러지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학교를 못 다니고 회사에 취직을 했지만, 병마와의 싸움으로 직장생활도 온전히 임하지를 못했다. 당시 선생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 자취를 했던 그는 동료들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그의 자취방에 놀러온 언니들을 향해 정확한 예언을 하면서 첫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떤 신내림을 받지 않았는데도, 열일곱 살에 그 자리에서 영매를 풀어내는 천리를 얻어 낸 것이다.
치유능력 실려 죽어가던 아이도 살려
곧 그에게 신이 내려 말문이 터졌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고, 생전 못 보던 사람들이 선생의 집 앞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로 사람들만 앞에 앉으면 신이 실려서 애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졸지에 점사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 예언이 백발백중하여 힘이 들어서 못 견딜 만큼 많은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몸이 아프기는커녕 오히려 아팠던 몸이 씻은 듯 나았다고 한다.
선생이 점사를 보고 난 후부터는 집안이 안정되기 시작하였다. 병에 시달리던 가족들은 병이 나았고, 우환과 갈등도 잠잠해졌다. 자신의 딸에게 신이 실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부친 또한 인정을 하시고 오히려 지원을 해 주셨다.
남들처럼 내림굿을 하지 않았는데도 신이 실린 그는 신이 시키는 대로 서랍장 위에 물그릇 하나만 떠놓고 점사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촛대를 올리고, 다음엔 향로를 올리고, 그렇게 차차 모습을 갖추어 가며 손님을 받았다. 그렇게 선생은 밀양에서 제법 유명세를 타는 인물이 되었다.
신엄마나, 신선생의 가르침 없이 저절로 신이 실려 점사를 보는 예는 극히 드문 대신 굉장히 신통한 실력을 발휘한다. 특별히 치유능력에 탁원한 힘을 가진 선생은 죽어가던 아이도 살려냈다.
"처음에는 환자들이 그렇게 몰려오더니, 어느 순간에는 사업하시는 분들이, 또 어느 해에는 경찰관들이, 또 어느 해에는 신문사 기자들이 몰려왔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오자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돈을 관광 사업으로 모조리 잃고, 내 삶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신의 뜻 거부하고 관광 사업 시작
김경옥 선생은 자신의 주인은 늘 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이 생기니 주인을 내버려 두고, 자신의 감정이 하자는 대로, 또는 주변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러한 제자를 신은 절대로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고 한다. 신은 제자들이 욕망의 도적놈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절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이 김경옥 선생의 설명이다.
“결혼을 하고 우연히 관광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암에 걸리면서 사정이 딱해지자 돕는다고 뛰어 든 사업이 어떻게 하다 보니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처음에 사업을 시작할 때 내가 모셨던 할아버지, 할머니 신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주변상황에 끌려 늪에 빠져들듯 개입이 되고 만 것이다. 결국 대형버스 20대를 굴리는 관광회사가 설립되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던져 밀어 준 사업이었는데, 곧 IMF가 터졌다. 제대로 시작도 못해 본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어음도 끊고, 당좌수표도 끊어가며 이리저리 부도를 막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밀양 연합회 어머니 회장 타이틀을 맡고 있었고, 음악을 하는 딸의 비싼 레슨비를 눈 하나 깜짝도 안하고 지불했었는데, 그만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내가 대표이사 자리를 책임졌고, 결국 당좌수표가 터지면서 구속이 되고 말았다. 마치 화마가 휩쓴 듯 모두 사라지고, 내 몸뚱이와 법당만 남게 되었다.”
사업과 가정 잃은 후 법당 문 닫았지만
신의 뜻을 거부하고 사업과 가정을 잃어버린 김경옥 선생은 법당을 내리겠다고 신께 선언을 했다. 자신의 가정 하나도 못 지킨 사람이 어떻게 남의 가정을 돌보겠냐면서 문을 닫았다고. 법당을 내리고 빚을 갚겠다고 자신의 뜻대로 장사를 하며 전전긍긍했지만, 결국 얻는 것은 상처와 질병뿐이었다. 불과 3개월 동안 무려 세 번의 개복 수술을 감행하면서 그는 다시 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나는 다시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을 했다. 할아버지 저 갑니다. 당신에게로 다시 돌아가오니 빚 다 갚게 해 주시고, 남에게 베풀면서 살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다짐을 하고 다시 법당 문을 열려고 하는 중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운전을 하는 중 경찰서로 잡혀 갔다. 대표이사 타이틀 때문에 사기배임으로 기소중지가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억울한 내 사정을 안 판사가 재판을 받고 나오는 나에게 “억울하면 상고를 하세요.”라고 전하더라. 법정구속이 된 나는 감옥에 밤새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오죽하면 교도관들이 지나가면서 “누우세요, 좀 누우세요.”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전하고 갔다.”
선생은 날마다 일어나 108배를 하면서 억울함을 벗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 결국 상고 신청을 했고, 승소를 하여 구속 49일 만에 석방이 되었다. 피고인이 상소 신청을 하여 대법원에서 승소를 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는 교도소에서의 49일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고 한다. 자신이 있던 방에 살인수가 세 명이나 있었는데 모두가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었다. 별별 삶들을 경험하며 많은 사람들이 번뇌망상이 자신의 주인 노릇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문과 커튼을 닫으면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노예가 되어 깜깜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신이 빼앗는 것은 건강과 물질이 아니라
결국 우리의 어리석음을 무너뜨리는 것
김경옥 선생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고 전했다.
“신은 자신이 무속인의 운명인지를 모르고 헛것을 쫓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자신의 사명을 저버리고 환상에 묻혀 살게 된다면 그 헛것을 모조리 빼앗아 버린다. 그래야만 무속인의 본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신이 빼앗는 것은 건강과 물질이 아니라 결국 우리의 어리석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다시 신 앞에 자신을 내려놓은 선생은 10년 만에 모든 빚을 다 갚았다.
제주도에 온지 3년이 되었다는 그는 길 잃은 제자들을 만나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 30여 명의 제자를 배출한 그는 남을 도울 때 신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는 희열을 맛본다.
드높은 한라산의 기운이 넘치는 제주도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앞길이 캄캄한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는 선생은 모든 것은 진실한 마음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전한다.
누굴 만나든 진실한 마음 안에서 커다란 인연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는 무속인들의 삶 아주 작은 일에도 솔선수범 하는 착한 무속인으로 거듭 나길 기원하며 (기도처 청소하는 무당)세월호사건 경주, 포항 지진 등으로 아픔을 격고 있는 이들이 하루속히 고통에서 헤어나시길 기원하며 세상모든 사람들 모두 무술년 새해에는 안과 태평하시고 소구소망 이루시길 기원한다.